얼마 전 파리에 번개를 동반한 기습 폭우가 내렸다.
폭력적이면서 황홀하다.
아스팔트가 언어의 기능이 있다면 “아~ 좀 그만 때려.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할 것만 같다.
그 비를 보며 담배 한 대 피워 물었다. 연기까지 집어 삼키는 폭우를 잠깐 즐겨볼까 고민했다.
그냥 한 번 맞아 봐.
창문 밖에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우두두 머리 위로 떨어지는 세례.
얼른 다시 고개를 안으로 집어넣고는 생각했다.
“젖어선 안 되는 것이 많구나. 휴대폰도, 지갑도, 속옷도.”
‘빈센트 반 고흐’ 의 작품 중 마음에 드는 작품을 꼽으라 하면 손가락에 꼽히는 것 중 하나가 ‘종달새가 있는 밀밭’ 이다.
고흐의 당시 심정을 그림을 통해 투사하긴 어렵겠지만 뭔가 비오는 날을 그리고 싶었는데 맑은 날 그린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내 꺼먹 눈에는 비 내림이 보인다. 먹먹하면서도 가슴이 뻥 뚫리는 그림 -적어도 내겐 그렇다- 이다.
명작이다.
예전부터 언제고 작품의 배경이 됐던 ‘오베흐-쉬흐-우아즈(Auvers-sur-Oise)’라는 파리 외곽의 조그마한 마을에 가 빤스만 입고 쏟아지는 비를 맞아봐야지 작심했다.
방문한 그 날, 그토록 원하던 비까지 내려줬는데, 망설임이 많았다.
젖어선 안 되는 것들, 버려선 안 되는 것들을 너무 많이 지니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니면 지닌 것 자체가 적기에 지닌 것을 놓치는 것에 광기를 부리는 것인지.
밀 겉이가 끝난 오베르흐-쉬흐-우아즈의 밀밭은 황금 물결 대신 물에 젖은 갈색 물결로 일색이다.
그땐 몸은 상관없었다.
다만 카메라만큼은 보호해야 했다.
맞다.
젖어선 안 되는 것들이 많구나.
욕심이 많구나.
이런 내 갖잖은 욕심을 반성하면서도 모네처럼 빛을 쪼개볼 줄 알고, 고흐처럼 공기의 흐름을 볼 줄 알았으면 하고 또 욕심을 부린다.
속세를 떠나긴 힘들 상이다.
사진은 겉이가 끝난 밀밭을 농부가 트랙터로 정리하는 모습이다. 전부라 생각했던 황금 옷을 벗어던져 버렸는데도 또 다른 볼 거리가 있었다.
<저작권자(c) ROOM265,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2015/01/04 20:04 송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