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시내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가판대는 한국의 막과자 가판대의 프랑스 버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다. 주로 지하철역 근처에서 볼 수 있다는 것도 한국과 비슷한 점 중 하나다. 주로 초콜렛이나 젤리 따위를 판매하고 있다. 제품의 질이 고급스럽지 않다는 점, 맛 보다는 형형색색의 컬러로 손이 가게 유혹한다는 점 등이 꼭 80~90년대 우리나라 초등학교 앞 문방구 좌판에서 팔던 불량식품류와 한국과 비슷해 재미있다. 실제로 추억의 쫀듸기, 꿈틀이 젤리 등 우리의 ‘대표 불량식품'(?) 등도 진열돼 있어 재미와 추억을 더해준다.

구매 방식은 판매 상인이 건네주는 종이 봉투에 자신이 원하는 만큼 주걱으로 퍼 담은 후 무게를 재 가격을 매긴다. 가게마다 상인의 기분에 따라 가격이 매번 달리지는 것으로 보아 무게와 가격이 꼭 비례하지는 않는 것 같다.

walking_seine_001 walking_seine_005 walking_seine_004 walking_seine_003 walking_seine_002 walking_seine_007

이것은 빛바란 오색의 단상이다.

 오랜만에 해가 그 비싼 얼굴을 환하게 내밀기에 후다닥 준비하고 외출을 감행했다. 개인적으로 그렇게 의미 있는 날은 아니지만 내일은 발렌타인데이가 아니던가. 왠지 분홍색이 하늘을 덮어버릴 것 같은 날이라 큰 마음을 먹고 책벌레 썩는 냄새만 풍기는 방구석을 나섰더니, 기다렸다는 듯 빗줄기가 내 얼굴에 달려든다. 하늘을 올려보니 얇은 구름이 하늘을 온통 감싸고 있다. 이것은 오래 가는 비로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2015년의 발렌타인을 미리 즐기기 위해 포기하지 않고 천근같은 발걸음을 옮겼다. 

 소르본 근처의 사진 전문서점을 들러 책을 한 참 뒤지고 돌아오는 길에 평소 불량 식품틱한 단내가 싫어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과자가판대가 눈에 들어온다. 비가 와서 그런지 한산하다. 술에 취한 두 남자가 과자를 열심히 고르고 있다. 한명은 일회용 컵에 맥주를 따라 계속 홀짝거리며 안주로 젤리를 연신 집어 삼킨다. 한명은 내 입에 계속 젤리를 넣어준다.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한국에서 왔다고 다섯 번 말했는데 중국에서 온거라는 대답을 여섯번 들었다. 주인 아저씨에게 구원의 눈길을 애타게 보냈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만이 돌아온다. 결국 두 남자의 술주정을 다 받아주고 그들이 과자 값을 치르고 나서야 나는 조용히 과자를 구경할 수 있었다.

 세계 어느나라를 가도 똑같이 느끼는건 ‘사람사는 모양새는 다 비슷하다’ 였다.

 술 마시고 가판대에서 붕어빵을, 생과자(센베)를 사는 남자들의 모습은 한국도 일본도 프랑스도 똑같다. 아니, 일본은 보통 초밥이었던가. 술에 취해 과자봉지를 꼭 쥔 손을 흔들며 비오는 거리로 녹아드는 두 사람의 등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 아빠다. 내가 한 열살 남짓 즈음의 우리아빠. 술에 취해 밤늦게 귀가할때면 아빠의 오른손에는 언제나 검은 비니루 봉다리가 바작바작 소리를 내며 달라붙어 있었다. 아침에 대충 면도한 턱수염이 다시 조금 돋아난 까끌한 아빠의 얼굴이 우리 뺨에 양껏 부벼지고 나서야 그 검은 봉다리는 아빠의 손에서 떨어져나와 나와 내 동생의 손에 쥐여졌다. 그 안에는 뭉개져 속이 터진 붕어빵이나, 다 깨진 센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투과자 등이 들어있었다. 아마 그때의 아빠도 저 남자들의 모습과 같았으리라. 술에 취해 자식들 입에 들어갈 주전부리를 호기롭게 골라담아 행여 놓칠새라 그 솥뚜껑같은 손으로 꼭 쥐고 이리 흔들 저리 흔들 들고 왔으리라. 

 지금은 옛 남자친구가 된 사람도 그랬다.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 다음날은 집안 어딘가 하얀 두루마리 휴지에 꽁꽁 싸인 안주거리가 놓여져 있었다. 그것은 먹다남긴 육포일 때도 있었고, 다 부서진 과자일 때도 있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호떡이나 한입 베어문 다 식어 빠진 치킨 조각일 때도 있었다. 자그마한 방은 술냄새로 가득차 있고, 나는 키보드 위에 보란듯이 올려진 하얀 휴지에 싸여진 육포를 바라보고 있다. 열살 때도 그랬다. 단칸방은 술냄새로 가득차 있고, 나는 속이 터진채로 다 식어빠진 붕어빵뭉치를 바라보고 있다.  

 헛웃음이 터져나온다. 빗방울 사이로 비척비척 걸어가는 이름도 모르는 프랑스 남자의 뒷모습에서 이십년전의 한 남자와 일년전의 또 다른 한 남자를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내 앞에는 싸구려 단내를 물씬 풍기고 있는 멀쩡한 모습의 과자들이 늘어서 있다.

Close
G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