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사유 궁전의 조경을 담당했던 르 노트르가 설계한 정원. 기하학적이면서도 우아한 느낌을 주는 정원은 파리 시민들의 자랑거리다. 동서는 콩코르드 광장과 루브르 궁전으로, 남북은 센 강과 리볼리 거리로 둘러싸여 있다. 파리 1구의 거의 6분의 1을 차지한다.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 주는 정원은 관광 명소인 동시에, 파리 시민들이 자부심을 갖는 산책 코스이기도 하다. 가장자리에는 아름드리나무가 심어져 있고 팔각형 인공 호수가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
풍경은 사계절 내내 멋스럽지만 특히 봄부터 가을까지의 정경이 빼어나다. 햇살이 따스한 날에는 자그마한 분수대 주변을 둘러싼 벤치에 앉아 산책하거나 여유롭게 휴식을 취하기에 좋다. 인상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카미유 피사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이곳을 거닐며 정원의 다양한 풍경을 캔버스에 옮겼다. 대표작으로는 비가 내리는 날의 하늘을 서정적으로 묘사한 <비오는 날의 튈르리 정원>(1899)이 있다.
튈르리 정원의 역사는 1563년에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튈르리 궁전과 이탈리아식 정원을 만들게 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 후 앙리 4세에 의해 양잠장과 오렌지 농원(현재 오랑주리 미술관이 들어선 자리)이 추가되어 귀족들의 환담 장소가 되었다. 르 노트르가 정원의 정비를 시작한 것은 1664년의 일이다. 그는 자연과 과학의 조화를 기하학적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토지의 기복을 보완하기 위해 남쪽과 북쪽에 한 단 높은 테라스를 만들고 조각상, 연못, 화단 등을 대칭적으로 배치했다. 그리고 중앙에 가로수 길을 통하게 해 원근법을 이용한 장대한 조망을 만들어 냈다. 재상 콜베르는 튈르리 정원을 왕가 전용으로 하려고 했으나, 작가 샤를 페로의 반대로 결국 민중에게 널리 공개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튈르리 정원의 이면에도 혁명기의 어두운 역사가 있다. 1792년 루이 16세 일가는 폭도가 침입한 튈르리 궁전에서 정원을 가로질러 입법 의회장으로 피난했으나 그 후 탕플 탑에 유폐되었다. 1848년에는 실각한 루이 필리프 왕이 북쪽 테라스 아래 지하 복도를 통해 탈출해 영국으로 망명했다. 튈르리 궁전은 1871년에 소실되었으나 르 노트르가 설계한 부분은 거의 현존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새순이 돋기 시작하는 3월부터 낙엽이 모두 떨어지는 늦가을 11월 초까지 너무나 아름다운 튈르리 정원입니다. 일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볕이 좋은 날에는 파리지앵들이 삼삼오오 찾아와 산책과 여유를 즐기는 곳입니다. 베르사이유 정원을 담당했던 르 노트르가 설계를 담당했는데요, 이탈리아식 차용한 정원답게 인공 분수와 형형색색의 꽃들이 사각형으로 단정하게 전지된 나무들과 정원을 감싸고 있는 루브르와 파리의 아파트 건물과 어우러져 옛 프랑스 도시의 정취를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곳곳에 자리 잡고 있는 세월에 닳은 조각상들이 여름에는 꽃밭에 둘러싸여, 가을에는 떨어지는 낙엽사이로 방문객들에게 손짓을 하고, 튈르리 정원 연못 옆에 자리잡고 있는 카페에서는 잠시 앉아 꽃내음에 섞여 코끝을 간지럽히는 커피향을 즐기실 수 있습니다.
꽃피고 바람부는 3월부터 낙엽으로 우아하게 물드는 10월에는 그 풍경이 너무나 아름다워 파리를 방문하시는 분들께 반드시 권해드리는 장소입니다. 제 기억으로는 루브르에서 튈르리정원으로 넘어가는 초입에 젤라또로 유명한 아모리노와 맛있는 빵으로 잘 알려진 PAUL의 가판대가 있었는데 계속 올해도 계속 자리잡고 있을지는 잘 모르겠네요. 볕이 좋은 날에는 거리의 음악가들과 에펠탑 모형등의 기념품을 파는 보자기 장수들도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귀찮게 하는 보자기 장수들을 피해 자리를 잘 잡고 바람에 실려오는 나뭇잎의 냄새를 맡으며 음악을 듣는 것도 괜찮겠지요.
파리는 5분 걸으면 새로운 관광명소가 나오는 세계최대의 관광 도시지만, 파리를 방문하여 관광지만 바쁘게 돌아보는 것은 프랑스식 여유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바쁘고 타인에게 관심없기로 유명한 파리지앵이지만, 본인의 휴식시간은 칼같이 지킨답니다. 파리가 주는 여유를 느끼며 산책하듯이 파리를 즐겨보세요.